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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인조반정
조선왕조의 인조반정 조선왕조의 네 번째 반정인 인조반정으로[4] 백부 광해군과 지지세력인 북인(대북파) 일파를 축출하여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는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의 5남인 정원군이며, 어머니는 연주군부인 구씨다. 선조는 또 다른 후궁 공빈 김씨에게서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고, 늦게 맞이한 계비 인목왕후에게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따라서 임해군, 광해군, 영창대군은 인조의 삼촌, 정명공주는 인조의 고모가 된다.[5]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장남[6]으로 태어나 능양군[7]으로 책봉되었다. 원래 인조는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인조반정이라는 상당수의 실무자와 중립세력들이 협력한 쿠데타(반정) 과정을 통해서 왕위에 추대되어 오른다. 왕비는 두 명으로, 능양군 왕비는 두 명으로, 능양..
2022.06.03 -
사면초가의 뜻의 유래
사면초가의 뜻의 유래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나오는 상황으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를 이른다. 진퇴양난의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판사판과도 뜻이 비슷하다. 결국 서초패왕 항우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차마 항우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소설 초한지 이후 소설 초한지에서는 우미인 자신이 항우의 걸림돌이 된다며 직후 자결하였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정사에선 거론되지 않는 내용이다. 애초에 우미인 자체가 항우에게 총애받았다는 것 외에는 많은 서술이 남아있지 않는 인물이다. 사실 사면초가와 비슷하게 적군에게 익숙한 노래 등을 틀어서 사기를 꺾는 심리전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종종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릴리..
2022.06.03 -
스튜어트 가문의 시조를 알고 싶다면!
스튜어트 가문의 시조를 알고 싶다면! 스튜어트 가문의 시조는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의 귀족 출신으로 11세기 노르만 왕조의 시조인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침략 때 브리튼 섬으로 건너온 앨런 피츠플래드(플래드의 아들 앨런)였다. 앨런은 잉글랜드의 헨리 1세에 의해 영지를 수여받아 잉글랜드의 귀족이 되었다. 11세기 브르타뉴는 인접한 노르망디와의 교류가 잦았고, 일부 귀족들이[1] 노르만 침공에서 공을 세워 영지를 수여받기도 했는데 앨런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렇듯 앨런의 후손들은 잉글랜드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으나, 12세기 스티븐 왕과 마틸다 공주 사이에서 일어난 내전(무정부시대) 시기에 마틸다를 지지했다가 스티븐이 1차적으로 승리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스코틀랜드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던켈드 ..
2022.06.02 -
역사의 바티칸 시티
역사의 바티칸 시티 남유럽에 위치한 도시국가이자 이탈리아 로마시에 둘러싸인 내륙국. 로마 주교이자 전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을 국가원수로 한다. 워낙 작고 특수성이 강한 국가이다 보니 정치 체제 역시 독특한데,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선거군주국이자 신정국가라는 비범한 조합을 자랑한다.[7] 2011년 3월 2일 호주 매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티칸의 인구는 여성 32명, 남성 540명으로 총 572명이라고 한다.[8] 그러나 바티칸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실제 인구는 223명에 불과하다.[9] 비록 이탈리아의 로마에 둘러싸인 형태[10]로 존재하지만,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어엿한 독립국이다.[11] 특히 세계에 퍼진 가톨릭의 위상을 생각하면 국가 규모에 비해 세계에 ..
2022.06.02 -
최치원 통일신라의 역사
최치원 통일신라의 역사 통일신라 6두품 출신의 문인으로 최승우, 최언위와 함께 신라삼최 중 하나로, 한국 유학과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겨 후대 고려, 조선시대까지 숭앙되었다. 삼국사기에서 의 서문에 유-불-도의 핵심 가르침이 이미 한국의 고유정신인 풍류(화랑도)에도 존재하는 것이라 말하였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의 중시조이다. 최씨의 시조는 신라 건국기의 인물 소벌도리지만, 사실상의 시조는 최치원으로 여긴다. 다른 최씨의 시조도 경주 최씨에 비롯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한민국의 대부분 최씨의 중시조라 할 수 있다.[2] 뛰어난 천재로서 신분의 벽을 넘기 위해 해외 유학을 가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실현한 후 나라를 살리기 위해 돌아왔지만 다시 한 번 신분의 벽에 막혀 좌절한 사람의 대표격으로 알려져 ..
2022.06.01 -
전봉준은 천안 전씨
전봉준 한약방에 들어가다 전봉준은 천안 전씨 시조 전섭(全聶)[5] 서당이나 한약방 등을 운영한 것을 보면 조선 말기에 흔했던 몰락한 중인 또는 양반 집안으로 보인다. 전봉준의 부친은 1827년생으로 창혁(彰赫), 형호(亨鎬), 승록(承祿) 등의 이름과 함께 족보명은 기창(基昶)으로 나오고(세간에 알려진 이름은 창혁), 모친은 1821년생으로 언양(彦陽) 김씨(金氏)라고 되어 있다.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은 고부 마을에서 향교의 장의를 했다고 한다. 촌로들에 따르면 전창혁은 장의가 아니라 동리의 일을 보는 사람(지금의 이장)이었다고도 하였다. 전봉준은 이런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다른 아이들처럼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유난히 키가 작아 5척(약 152cm)에 불과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녹두(綠..
2022.05.31